날것의 감정(베타)을 의미있는 생각(알파)으로 변환하는 힘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감정의 파고를 경험합니다. 특히 배고픔, 두려움과 같이 즉각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때로 감당하기 버거운 원시적인 고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아직 심리적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각 덩어리, 즉 W. R. Bion이 언급한 '베타 요소(beta elements)'에 가깝습니다. 이 베타 요소들은 우리를 압도하고, 제대로 이해하거나 다룰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하죠.
하지만 이때,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심리적으로 처리하고 견뎌낼 수 있는 핵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W. R. Bion이 제시한 '생각하는 기능(thinking function)'입니다. 이 '생각하는 기능'이야말로 베타 요소를 소화하여 우리가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알파 기능(alpha function)'의 핵심입니다.
비온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감정을 견뎌낼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마치 외부의 충격(감정, 베타 요소)이 내부의 사유 공간(생각)에서 '담아내기(containment)' 과정을 통해 심리적으로 소화 가능한 형태로 변환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날것의 베타 요소는 '알파 요소(alpha elements)'로 변형됩니다. 알파 요소는 우리가 꿈을 꾸고, 기억하고, 사고하며, 이성적으로 관계를 맺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의미와 형태를 갖춘 심리적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유아가 갑작스러운 배고픔이나 엄마의 부재로 인해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낄 때, 이러한 감정들은 통제 불가능한 '원시 감정', 즉 베타 요소로 다가옵니다. 아이는 이 감정을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 없기에 무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점차 '생각하는 기능', 즉 알파 기능을 발달시키면서, 이 감정들을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아,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배가 아픈 거구나. 엄마가 아직 밥을 주시지 않았지만, 곧 오셔서 밥을 주시면 괜찮아질 거야."
이처럼 감정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감정의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사고의 과정을 통해 아이는 즉각적인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불편한 감정을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곧 원시적인 감각 경험(베타 요소)을 정신적인 생각(알파 요소)으로 변환하는 알파 기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유아기 때 엄마로부터 이러한 감정들이 적절하게 '담겨지는(contained)'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하면, 아이는 자신의 날것의 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이를 '액팅 아웃(acting out)'으로 표출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분노 폭발, 공항발작, 공포에 압도 되는 형태로 나타나며, 내면의 생각하는 공간을 제대로 형성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외상적 사건이나 트라우마에 휩싸이게 될 때에도, 이처럼 소화되지 않는 감정들이 우리를 압도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희망적인 점은 이러한 어려움들이 정신분석을 통해 점차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서 우리는 전문가에게 자신의 소화되지 않은 감정과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마치 유아기 때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담겨지는' 경험을 다시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날 것의 베타 요소들을 점차적으로 알파 요소로 변환하며, 상실되었거나 미성숙했던 '생각하는 기능'을 다시 활성화하고 성장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현재의 삶을 더욱 성숙하게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인지적 능력을 넘어섭니다. 이는 자신의 즉각적인 충동이나 원시 감정(베타 요소)을 '액팅 아웃(acting out)' 하는 대신, 내면에서 그것을 심리적으로 '억제하고 담아낼 수 있는(contain)'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고 과정은 날것의 감정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내면의 경험을 다루어 나갈 수 있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됩니다.
우리가 베타 요소를 알파 요소로 변환하는 이 '마음의 소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심리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